사람들이 운명을 믿지 않을수록 모든 일이 자기 책임의 문제, 자기 스스로 계획하고 행동하고 결정하는 문제가 된다. 하지만 나이 듦과 죽음은 운명이다.
우리는 나이 듦과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이 듦과 죽음을 최대한 뒤로 늦추려고 할 것이 아니라 노화, 노쇠, 의존의 문제를 실제로 직면하여 극복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는 모두에게 해당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모두가 이를 이야기해야 한다. 심지어 오늘날에는 신학자 한스 큉이 말하는 자기 결정 혹은 자기 책임에 따른 죽음이 논의되기도 한다. 그는 안락사를 ‘최고의 생의 지원’으로 보며, 마지막까지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가능성으로 본다.
“그 때가 되면(내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언제 어떻게 죽을지 스스로 책임지고 결정할 수 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나는 의식적으로 죽음을 맞이하고 인간답게 내 삶과 작별하고 싶다.”
큉은 인간의 수명이 길어진 것이 자연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의학의 발전 덕분이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이러한 장수에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추가적인 시간들은 신이 만든것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다음가 같은 질문들이 생겨난다.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가? 모든 약을 삼켜야 할까?” 이러한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이러한 질문들은 당연히 찬반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또한 다양한 종류의 도덕적 딜레마가 생겨나지만, 그것들은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자신의 삶을 스스로 마무리하는 이러한 자기 결정의 자유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며, 우리 세대는 자기 결정의 자유로서 이를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우리 세대는 이러한 자유 아래서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이는 종종 대화 중에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긴급한 상황에서는 그러한 가능성이 있다면 좋을 거야. 적절한 순간을 놓치지만 않는다면, 하지만 더 좋은 것은 그런 상황에 처하지 않고 그런 생각과 행동을 할 필요가 없는 거야.” 그렇다면 적절한 순간이란 언제인가? 스스로 결정하는 자유에는 두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